2016/10/20

빚은 자산이다

은행에 100만원을 맞겼다고 치자.

이자가 연 3%다. 1년 뒤에는 103만원이 될 것이다.

2011 올해는 물가상승률이 4%대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의 103만원은 올해의 100만원보다 못한, 약 99만원의 구매력이 있을 것이다.

한은이 금리를 3.25%로 동결한지 몇달째. 마이너스 금리 상태다. 만원 단위니까 우습게 보이지만, 억원 단위였다면 1억원 손해다. 은행 이자를 받으면서도.



은행의 대출 금리는 신용 등급이 좋아도 5~7%대, 안좋으면 그보다 훨씬 높은 2~30%까지 치솟는다. 30%대의 사기/살인적인 이자율 상품에 대해서는 월 2~3%라고 광고하기도 한다.("그렇게 치면 너네들이 주는 이자는 월 0.2%야"라고 손가락 하나 치켜들며 답해주고 싶다)

아무튼 은행은 이런 이자 차익으로 돈을 번다. 물가를 잡으려고 금리를 올리면 아파트 구입을 위해 받은 가계대출, 사업 운영자금을 위해 받은 기업대출 등 민간부문의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한다. 대출자들의 다양한 재정상태 spectrum을 감안하면 새로운 파산자들 - 금리를 안 올렸다면 괜찮았을 - 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나마 개인들은 상황이 낫다. 오늘날의 진짜 문제는 각국의 정부, 그 중에서도 특히 미국 정부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무려 $15 trillion(2011.7.29 추산)이다.

오늘 금리인 1128원/$1로 계산하면 16,920,000,000,000,000원, 또는 1경 6920조원이다. 이는 미국 한해 국내총생산(GDP)의 100~110%인 수치이며, 한국의 GDP의 10배에 달한다.

(위 두 줄이 무색하게, 2016년 10월 현재 $19.7T에 도달. 5년새 30% 증가했다 미친;;; 우연의 일치로 거의 비슷한 곳에 머물러있는 오늘의 환율(1121)을 적용하면 2경 2084조원)

세수로 따지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미국의 1년 세수의 5배가 넘는다. 그나마 이것도 일반적인 경제상황 하의 얘기고 2010년같이 상황이 안좋던 해는(08~09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162 trillion밖에 안 걷혔으니 부채는 1년 세수의 7배가 되는 셈이다.

이 말은 즉 미국 정부가 세금을 단 한푼도 안쓰고 전부 빚 갚는데만 써도 모든 부채를 상환하는데 7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돈줄을 조이고 지출을 줄이면 경기침체를 일으켜서 그 영향으로 세수가 줄 것임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7년 안에는 어림도 없다. 물론 한 나라의 정부가 100% 부채가 없을 필요는 없다. (미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부채가 전혀 없었던 때는 제 7대 대통령 Andrew Jackson이 재임하던 1833년이었고, 미국 경제는 20세기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마지막으로 재정 흑자(부채 감소)를 이뤘던 해는? Clinton시절의 두 해 뿐이다.(그것도 대폭 부채 감소가 아니라 턱걸이 흑자였다)

문제는 미국의 부채가 나날히 늘어가는데다가 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차트를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원금상환은 커녕 이자 내기에만 급급한 상황인데도 매년 조 달러(수천 조원)단위의 적자를 내고 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수천억 달러(수백 조원) 단위의 돈을 군사비에 지출하고 있다.



미국의 부채가 늘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금 상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존재하는 부채에 대한 이자는 새로운 국채(부채)를 발행해서 갚는다. 상환은 커녕 갈수록 더 빌린다.

이제 부채를 갚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물론이고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정부의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리면 가뜩이나 허약한 상태의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먹일 것이고, 막대한 도산, 실업, 혼란으로 세수는 오히려 더 줄어들 것이다.
민의로 선출된 고작 몇년의 임기를 가진 의사결정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계속해서 돈을 빌리고, 빌리고, 또 빌리는 것이다. 4~8년만 넘기면 된다. 민중의 비난과 죽창은 폭탄이 터지는 시점에 대통령의 옥좌에 앉아있는 사람이 떠않을 것이다.



그런데 잠깐, 꼭 갚으라는 법이 있나?

FED관련 음모론자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미국의 국가 부채가 결국 아마겟돈을 불러올 것이라고.
천문학적인 빚 때문에 조만간 미국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거나 아예 파산할 것이고, 이로 인해 세계는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미국, 그리고 그 외 세계 각 선진국들. 이들은 한낱 개인이 아니다.
개인조차도 '100만원을 빌리면 벌벌 기지만 100억을 빌리면 떵떵거린다'고 하는데, 1경7000조원을 빌린 유일무이의 최강대국이 뭐가 두려울 것이 있을까.

오히려 후달리는 쪽은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아닐까?
이들은 미국이 '이자 내려줘'하면 무조건 내려줘야된다. 안 내려주면 파산이고, 파산은 인류의 파멸(...)을 의미한다.

또 중요한 것은 주요국들의 채권자들이 대부분 타국의 정부나 중앙은행들이라는 것이다.
심한 경우 이 debt game이 더이상 다음 턴으로 진행할 수 없을 정도까지 가더라도, 서로간에 '너 나한테 얼마 빚졌고 난 너한테 얼마 빚졌는데 사이좋게 망하느니 그냥 이정도 선에서 퉁치자'고 합의를 해서 빚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숫자를 딱딱 따지다가 사이좋게 대공황^2를 맞아서 세계대전 3를 찍고 멸망해버리는 것 보다는 나을테니까.



결국 오늘도 에스퍽 당하는 것은 우리들 페전트들이다.

대부분의 중산층(경제적으로는 거의 멸종 직전인 클라스지만, 교육 수준으로 따지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을 받고, 커리어를 쌓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크게 상회한다. 때문에 지금 세계 경제의 수면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수치를 보더라도 딱히 와닿지도 않고, 배경에 있는 메카니즘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무력감과 허무주의에 빠져서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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