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0

후쿠시마 원전 사고

알다시피 일본에서 엄청난 천재지변이 났다.

여기서부터 직선거리로 고작 1,00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난리가 났는데도 여기 이곳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1000km가 멀다면 먼 거리(4km/h로 걸어서 250시간, 하루 10시간 걸어도 25일)지만, 가깝다면 또 가까운 거리다(250km/h KTX열차로 4시간, 1000km/h 비행기로 한시간).

지구가 크긴 큰가보다...

원전 폭발에 의한 낙진도 여기보다는 태평양 건너 북미 서해안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해일은 일본이 막아주고, 오염물질은 편서풍이 날려보내주고... 하지만 중국에서 원전 사고가 난다면??



이번 사고로 원자력 발전이라는게 얼마나 어리석인 짓인가를 새삼 되뇌이게 됐다.

핵폐기물은 반감기가 짧은 것일수록 방출하는 방사선이 강하지만, 위험성은 강하면서도 반감기가 충분히 길어 애매모호한 종류가 있어서 이걸 수십년에서 길게는 수백년을 격리, 보관해야 한다.

이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 어짜피 내가 죽고 난 뒤의 일이니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지금 세대의 어리석음은 후세가 대대손손 감당해야 할 엄청난 빚이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후세는 현 세대의 사람들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원자력은 분명 필요하다.

수력, 풍력, 화력, 태양열, 지열 등등 발전 방법은 많지만, 각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원자력은 핵폐기물 문제/대형 안전사고의 위험만 빼면 제법 싸고(향후 우라늄 가격이 어떻게될지 몰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환경오염도 적다. 게다가 풍력, 태양열에 비해 발전량도 많다. 나날히 늘어만 가는 인구와 전력 수요에 맞추기 위해 우리는 원자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은 더 큰 문제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 지난 수일간 전세계가 조마조마하면서 그 똑같은 뉴스장면을 보고 또 보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낙후된 원자력 발전소 건물에 지진해일로 인해 전기가 끊어졌다는, 멍청하기 짝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진에 의한 데미지는 땅에 떨어진 담뱃불 수준이었다.
보조동력계가 동작해서 냉각수 펌프를 가동시켰으면 아무 탈 없이 넘어갔을텐데, 이게 무너졌다. 그리고 담뱃불은 산불이 됐다.

설계도 잘못됐고, 관리도 잘못됐고, 최초 대응도 잘못됐고... 잘못된 것 보다 잘된 것을 따지는게 더 빠른거 같은데 사실 잘된게 없다. 최악의 경우 원자로, 또는 폐연료봉이 녹아내려서 주변 일대가 반영구적으로 방사능 물질에 오염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멍청한 설계/구현상의 미스가, 이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거나, 알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니까 가능성 ~0라고 assume하고 넘어갔거나.



심히 두렵다. 엔지니어로서.

사람은 본래 완벽할 수가 없어서, 꼭 언제 어디선가는 실수를 일으킨다.(정해진 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컴퓨터나 로봇의 "완벽함"과는 비교도 안된다)


재작년인가... 미국에서 팔린 도요타 프리우스가 부품결함으로 급발진을 하는 사고가 몇건 일어나서 십수명이 죽었다.


이런 사고는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어디선가 꼭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으려면 시스템의 설계, 검증, 구현, 유지보수의 모든 과정을 로봇이 담당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로봇급의 깐깐함과 강박관념을 가진 인간들이 메인, 서브(백업), 백업의 백업으로 이중, 삼중으로 더블체크 트리플체크 해줘야 한다.

프리우스 급발진으로 몇명이 죽고 도요타에 몇천억엔의 손실이 나는건 그렇다 치자. 유가족과 도요타 관계자들에겐 참 안된 일이다.

근데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데미지를 인간은 물론 수많은 생물들과 자연 그 자체에 입힌다.



원자력은 버터를 자르는 데에 전기톱을 사용하는 격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이 말에 "어린 아이가"라는 말을 추가하고 싶다. 5살짜리 아이가 버터를 자르는데 전기톱을 들고 설치는 것.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 없이 '버터자르기'라는 목적을 잘 달성해 내겠지만 언젠가는 꼭 사고를 쳐서 손가락이 잘리거나 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한 100년남짓한 원자력의 역사에서 원전사고가 세번이나 있었다.(체르노빌, 쓰리마일즈, 그리고 후쿠시마) 전세계에 수천, 수만개가 있다면 말을 안해, 정확한 숫자는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많아봐야 100여기 정도 있는걸로 알고 있다. 100개 중에 3개에서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 일대는 아직까지도 - 앞으로도 계속 - 출입금지의 방사능 폐허다. 후쿠시마 원전 일대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화력이나 수력, 풍력, 태양력 등으로는 도무지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어디서 언젠가는 꼭 한번씩 터지고 마는 시한폭탄 같은 것을 안고 가야하나?

돈이 더 들더라도, 경제에 더 부담이 가고 실업률이 높아지더라도
차라리 완전히 안전한 풍력이나 태양력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후쿠시마 원전이 오래 전에 지어진 시설이고, 사용연한을 넘기면서까지 무리하게 가동해서 이러한 사고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현존하는 원전들이 안전하다고 하는 것은 좀 섵부른 결론이 아닌가 싶다.



이번 사고처럼 예상하지도 못한 재난에 의해 어이없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사고는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수십, 수백 평방km가 영원히 출입할 수 없는 방사능 폐기장이 될 것이다.

생각이 필요하다. 전력소비를 줄이고, 전력수요를 줄이고, 인구를 줄이고.

독일에서는 25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원자력발전 반대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