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7
개미는 기관을 이길 수 없다?
"개미(개인 투자자)는 기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북미에서 주식매매를 배우기 시작한 본인으로서는 개인/외인/기관 거래주체의 거래량을 발표하는 한국 시장의 시스템이 처음에는 매우 낮설고 신기했으나, 수 년이 지난 지금 저 말에 대한 답변을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을거 같다.
"그래봤자 기관도 시장을 못 이긴다"
개미가 기관/외인을 못 이긴다는 건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생각해보면 대다수의 일반 투자자들과는 별 관계 없는 얘기다. 기관/외인을 상대로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하드코어 개미, 전업투자자, one man army들에게나 해당될 말이다. 만기일 직전의 선옵 베팅을 두고 지수를 흔들 수 있는 외인 자본이 이리로 갈지 저리로 갈지를 쫒고 쫒기는 두뇌게임... 자본의 규모가 개미와는 비교가 안되는 기관/외인들은 시장을 비록 미약하게나마 원하는 방향으로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개미는 그들이 어디로 판을 움직일지를 추측하고 추측해서 배팅할 뿐이다. 하우스가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도박...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게 멍청하다.
기관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 또 있다. 바로 급등주/테마주, 또는 시쳇말로 "코스닥 X잡주". 주가 조작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정보력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기관들은 판을 깔아놓고, 탄을 장전하고, 개미들을 산 체로 잡아먹기 위해 유혹한다. 렌덤한 뉴스 하나 터지면 상한가, 하한가 가는 이런 잡주들은 작은 자금을 굴리는 꾼들의 놀이터이자 개미들의 무덤이다.
이러한 투기성 선옵거래, 코스닥 개잡주에 투자해서 번 돈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벌어도 번게 아니다. 확률이 압도적으로 불리하고, 판의 반대편에 있는 상대가 언제든지 원하는데로 룰을 바꿀 수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내 수중에 있지만 내 돈이 아닌 것이다. 한두번의 운좋은 승리는 점점 더 큰 베팅을 가져오고, 한 순간에 한방에 훅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미는 죽었다 깨어나도 기관을 이길 수 없다. 한번 뼈아픈 경험을 한 개미는 다시는 이런 사기게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면서 판을 떠나지만, 자신만은 시장을 이길 수 있는 미래의 워렌 버핏이라고 자만하는 초짜 개미들은 매년 수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다른 판에서 싸우면 어떨까?
기관이나 외인들이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정할 수 없는 거래소 대형주들 말이다.
대형주들로 판을 바꾸면 이번에는 기관/외인들도 개미들에게는 없는 약점들이 생긴다.
첫째, 이들은 투자 규모가 크다.
투자 규모는 장점도 될 수 있지만 너무 커지면 동시에 큰 약점이 된다. 자신들이 사기 시작하면 가격이 오르고, 팔기 시작하면 떨어지기 때문에, 섵불리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개미는 상황이 안좋으면 재빨리 전액 현금화 시켜서 튈 수 있지만, 기관은 시장이 급격하게 하락하면 손을 쓸 세도 없이 하락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둘째, 이들이 뭘 사고, 뭘 파는지를 누구나 알고 있다.
"거래소/코스닥 기관/외인 매수/매도 종목 상위 X개"하는 식의 자료는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이는 포커로 치면 패를 반쯤 열어놓고 치는 것과 같다. 개미가 기관 만큼만 하려면 그들의 매매를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 하지만 기관/외인도 시장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기관이 있다면, 일개 개인조차도 돈을 이빠이 끌어다가 지수를 공매도하고, 같은 액수를 기관에 맞긴다면 무위험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말도 안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