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2
그분 덕(?)을 보다
MB의 만행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서 대통령 욕을 하는 날이 다 오다니, 이제 한국 생활도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www.fnnews.com/view?ra=Sent0801m_View&corp=fnnews&arcid=201201260100215800010490&cDateYear=2012&cDateMonth=01&cDateDay=25
일의 발단은 사소했습니다. MB 형님께서 지난 1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기업의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누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적극 검토해서 본격적으로 추진하라"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삶의 질도 향상되고 일자리가 늘 뿐 아니라 소비도 촉진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선순환이 될 것"이라고 말]한것이 사건의 발단이죠.
잡셰어링... 잡을 셰어한다. 네, 뭐... 말이 되네요.(정말?) 좀 더 읽어보시죠.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지난 24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장기근로에 따른 각종 폐해를 근본적으로 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당 40시간 법정노동시간에 12시간 한도의 연장근무를 인정, 주당 최고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행정해석을 통해 연장근무 한도에 토.일.공휴일 근무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같은 장시간근로 관행을 개선하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근로기준법을 들이대서 주당 40시간 일반근무 + 12시간 연장근무 = 주당 최고 52시간을 못 넘기게 해서 기취업자들이 일을 덜하게 하면, 고용주는 새로 인력들을 채용해야 하고, 따라서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논리군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의 '201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토대로 산출한 바에 따르면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제대로 지키기만 해도 4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최근 고용부가 완성차업계를 대상으로 교대제 개편 등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강도 높게 추진하는 이유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이 깔려 있다.]
우와 새로운 일자리가 45만개나... 정말 좋은 정책이군요! 임기 마지막 해에 뭐 한건이라도 해놓고 가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군요.^^
...하지만 현시창.
우선은 주 52시간의 근무시간인데, 솔직히 넘기기 너무 쉽지않음? 8시간 기본 근무에 매일 2시간 정도 OT하면 바로 50시간이라 일이 많아도 주말에 나갈 수가 없죠.
프로젝트 스케쥴에 따라서 일이 몰리기도 하고, 한가해지기도 하는 연구개발 업무라면 특히나 평균 주50시간은 가능할지 몰라도, 일이 몰리고 스케쥴이 빡빡해지는데 주52시간이라니 어불성설이죠.
그렇다면 사람을 더 뽑아라. 일자리를 늘려라.
제가 재벌은 아니지만, 단번에 말이 안된다는건 알겠네요.
사람 더 뽑으면 돈은 정부에서 대신 내줄건가요?^^
한명 쓰는데 신입도 대충 4000, 어느정도 경험/경력 있는 senior engineer급은 5~6에서 7천까지도 듭니다. 주 60시간(평일 평균 10시간+주말 하루) 일하는걸 50시간으로 제한하면 다섯명이 하던 일을 여섯명이 해야되겠죠? 같은 아웃풋을 얻으려고 20% 인건비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요? 대기업 연봉이 높으니까 임금을 삭감하라고 하면 뭐... 16.7%만 깎으면 되는군요. 과장은 대리연봉 대리는 사원연봉.. 저야 전세대출도 없고 먹여살릴 자식도 없으니까 월급 16.7% 삭감한다고 해도 '아 이제 평생 집사는건 포기하고 살아야겠구나 아이 신난다'고 하면 땡이지만, 아이 둘에 집 전세대출 갚느라고 한푼도 못 모으는 분들중에는 적자로 전환하는 가계도 상당수 있을겁니다. 퍽이나 좋아라 하고 잡셰어링 하겠네요. 노동부 장.차관들부터 솔선수범해서 잡셰어링 해보시는건 어떨지?
그리고 문제는 돈뿐만이 아닙니다.
일에는 한사람 한사람이 맡아서 할 수 있는 범주, scope라는게 있습니다.
특히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는 관리자(메니져) 롤에 있는 사람의 업무는 그렇게 케이크 자르듯 자를 수 있는게 아닙니다. CEO가 업무량이 많다고 두명, 세명이 되면 회사가 돌아갈까요? 상식적인 얘기라 더 해봤자 입만 아프네요.
한마디로 정책이 말이 안되는거죠.
매일 매일 그냥 저냥, 하루 하루가 똑같고, 일이 아무리 산더미같이 쌓여있어도 퇴근 시간되면 땡하고 칼퇴근하는 공무원들 머리에서 나올 법한 발상 아닙니까? 남이있는 일은 다음날로 미루면 되니까요. 경쟁자가 없으니까요. 싫으면 이민가시던가...
아무튼 MB님 덕분에 요즘은 OT하면 인사팀에서 경고메일이 날라옵니다. 8시간이 되면 "OT 초과가능성 높음. 고위험군" 이러면서 경고 메일 오고, 내부 규정은 10시간 max라서 10시간 넘어가면 사유서 제출 고고씽(그냥 쉽게 말해 반성문...). 그래서 "그래 S.B. 그깟 OT비 푼돈 안줘도 된다 안줘도 난 내 할일을 할란다"면서 잔업비 안 올리고 OT하면(local들은 "무료봉사"라고 부른다죠), 이건 더욱 문제가 된다네요. 노동부에서 감사 나오면 얄짤없이 걸린데나...
대기업 인사팀들이 OT 관련해서 지난 수년간 암말 없다가 올초부터 난리 법석인 이유가 바로 MB 덕분인거죠.
그렇게 근무시간을 주먹구구식으로 40시간+12시간으로 못박고 단속한다고 해서 우리들 서민 회사원들의 일이 줄어드나요.
행여나 구직자/실직자 분들, MB가 그의 전매특허인 불도져 닥돌 스타일로 "잡셰어링"을 추진하면 진짜로 일자리 45만개 생기고 취직할 가능성이 올라가겠네 오오 우리의 MB사마! 하시는건 아니겠죠??... 요즘 같은 경기에 그런 식의 대규모 인력증원을 할 회사는 지구상에 한곳도 없습니다. 있다면 머리에 총맞은 회사거나 곧 망할 회사...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회사에서 일을 못하게 하니까, 일을 집에 가져가서 하고 있습니다-_-
일부 용자님들은 이딴 식으로는 일정 못 맞추겠다고 배째라는 식으로 나가고 있구요.
OT비 못받는 거, 퇴근하고 나서도 일하는 거, 그렇게 일하면서 회사에서 "나 늦게까지 이렇게 힘들게 일한다"면서 생색낼 수 없는 거, 뭐 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보안정책 때문에 외부에서는 업무용 서버에 접속 못 하는건 당근이고, 문서나 코드도 못 가지고 나가죠. 결국 집에 가서는 "이런이런 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내일 가서는 이러이러한 방식을 해 봐야지"하는 식으로 예행연습/코드 작성을 하고, 회사 가서는 그걸 다시 짭니다. 이거 할려고 대학 졸업하고 처음으로 집에 리눅스 깔았습니다. 이막스 환경 파일만이라도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이뭐병...
조금만 상식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을 모조리 진보좌빨,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보수, 우익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할법한 잡쉐어링을 그것도 "강도 높게 추진"한다니, 정말 뇌가 있는건지 의심스럽네요.
임기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말아 먹으려고 작정한 건지...
그리고 이번에는 우리의 자라나는 새싹들에게까지 마수를 뻗혔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021844361&code=910100
[李대통령 "초등학교 숙제 적게 내라" 특별지시
(...)
이 대통령은 어린이들이 ‘푸른누리 뉴스쇼! 고민을 말해봐’ 라는코너를 통해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다’는 것을 가장 큰 고민으로 꼽자 “손자, 손녀를 키워 보니까 지금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놀아야지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석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즉석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숙제를 덜 내게 해달라고 ‘특별 지시’를 내려 어린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 그림은 뭐가 문젤까요?
이분이 생각없이 입 끝에서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에 밑사람들이 정말 빠릿빠릿하게 잘도 움직이지 않습니까? "자기 사람"으로 진용을 꾸리는거 하나만은 정말 잘 하신거 같은데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숙제를 덜 내게 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는데,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걸 그대로 이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초등학교 숙제 줄임 > 초딩들 하루 1~2시간 자유시간 생김 > 집에서 딩가딩가 TV보고 컴터게임 하니 부모들 그 꼬라지 못보고 속 뒤집어짐 > 부모들 학원 1개 더 보냄 > 사교육비 부담, 가계 가처분 소득 하락 > 경기침체 가속화..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학원 두세개 보내는 나라에서...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요?
실업률이 높은건 대졸자들이 넘쳐나고, 대기업 밀어주기의 부산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환경 격차가 커져서 그런건데, 그걸 무작정 "몇시간 이상은 일하지 마라"고 못박아 놓고, 제대로 이행하나 감시하고 윽박지르고 불심검문해서 벌금 때리고... 이게 제대로 된 치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 취급을 받는건 마찬가지로 대기업 밀어주기, 부자감세, 각종 비리로 부자와 빈자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해서, "공부 죽어라고 하는 것 만이 살길이다", "명문대 가서 대기업 취직해야된다", "고시공부해서 고위공무원 돼야된다"는, 살기 위한 몸부림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인데, 이걸 두고 무턱대고 "초등학교 숙제 덜 내라"하고 특별 지시를 내리면... 사교육 배나 더 불려주겠다는 생각인가요?
생각이 없는 리더는 조직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35세에 현대건설 사장의 자리에 올랐던 분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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