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02

종편을 즈음해서, TV에 대한 생각

퇴근길 내 favorite인 KBS 라디오를 듣고 있었더니 종편에 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토론자 중 한분이 데이타를 들먹이면서 "한국인 평균 TV 시청 시간이 하루 3시간 입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입이 쩍 벌어진게 이 글의 시발점이다.

정말 하루에 3시간이나 TV를 볼까? 평균적으로?
사실이라면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평균에 해당하는 수많은 평균적인 분들한테는 아무런 뉴스도 아니겠지만.

이 3시간이라는 시간에 대해서..

24를 3으로 나누면 8이다.
즉, 이런 평균적인 사람들이 8일을 살면 평균적으로 그 중 하루 24시간은 꼬박 TV를 본다는 얘기다. 8년중에 1년이(잠도 안 자고) TV 시청이다. 대체 삶은 언제 사는걸까? 놀랍다.

짐작하셨겠지만 본인은 TV를 안본다. 전혀.

집에 있으면 보지만 대학교 간 이후로 사는 집에 TV가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가끔씩 다른 집에 가면 넊놓고 본다. 안보다 보는 TV는 정말 놀랍다. 매일 보는 사람은 모를것이다. 특히 놀란 것은 한국 광고들이 정말 세련돼졌다는 것이다. CG, 이펙트 수준도 높고, 창의적이고 톡톡 튀는 것들이 정말 많다.



광고하니 말인데, 요즘 한국도 그런지 모르겠다. 캐나다는 - 미국 방송이 대부분이지만 여튼 - TV를 보면 보통 10분 단위로 광고가 나온다. 30분짜리 프로그램이 있으면 첫 7~8분 후 2~3분 광고, 다음 7~8분 후 광고, 그리고 마지막 토막은 결론부가 있는 대신에 조금 짧고 다음 프로그램 시작 전까지 광고가 5분가량 있다.

얼마전에 한국 TV를 보니, 옛날처럼 정시에 프로그램이 시작하지 않고 3~5분 정도 늦게 시작하는거 같더라. 끝날때도 50분정도에 끝나고 계속 광고다. 아무튼 광고 정말 많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 시절 봤던 TV는 정말 1/3가량이 광고였다. 하루 3시간을 본다고 치면 1시간은 꼬박 광고를 보는 것이다.

방금 검색해봤더니 한국은 "방송법시행령 제 59조"에 의해 프로그램의 10/100만 광고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덴다.(출처)

위 글을 인용하자면 "60분 짜리 프로그램이라면 광고총량이 프로그램 앞, 뒤 합해 6분"이라며, 30초 짜리는 12개, 20초면 18개, 그러나 인기있는 프로그램에는 광고주가 많기 때문에 거의 다가 15초짜리(24개사, 앞 뒤 각각 12개사)라고 덧붙혔다.

고작 6분밖에 안됐던가. 갯수가 많아서 그런지 광고 정말 오래한다고 느꼈는데 말이다. 시간당 길이는 어찌됐던 매 시간 TV 시청자는 24개의 광고를 보는 것이다.



내가 TV를 안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컴퓨터가 있기 때문이다. 저번에 40인치 LCD TV를 등외품으로 구입했는데 한달동안 몇번 켜는일도 없어서 그냥 외할머니 드렸다. 컴퓨터가 없거나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좀더 많이 봤을거 같다.

근데 궂이 이런 "컴퓨터 선호성향"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람들이 TV를 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있다.

바로 수동성, 그리고 광고 때문이다.



컴퓨터는 사용자가 엑티브하게 뭔가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웹서핑을 하던, 게임을 하던, 동영상을 보던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제어를 해야한다.

하지만 TV는 그냥 전원을 켜 놓으면 계속해서 쓰레기같은 쇼프로, 드라마, 뉴스를 자동적으로 뇌에 스트리밍한다. 사용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체널변경, 음량변경이 전부다. 머리를 쓸 필요가 없고, 손가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것은 퇴화한다.

어렸을적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을 할 정도로 약간이나마 반 TV정서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애들이 컴퓨터 게임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면서 컴퓨터를 죄악시하는 부모들은 정작 자기들이 하루 평균 3시간씩을 TV앞에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게 더 멍청한 짓이라는걸 모르는 것이겠지. 관련 연구결과는 많다. 컴퓨터(게임 포함)처럼 사용자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것은 두뇌를 자극하고 지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TV처럼 사용자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기기는 정확히 반대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광고다. 그것도 뇌가 가장 수동적이고 가장 receptive한 상태에 있을 때 주입되는 광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인의 평균 TV 시청 시간은 하루 3시간이고, 한국 TV는 한 시간당 6분, 갯수로 치면 24개의 광고가 나간다. 한국인 평균 시청자가 광고에 노출되는 시간은
하루 평균으로는 18분이지만 1주일이면 126분, 즉 2시간에 달한다. 갯수로 치면 무려 504개. 놀랍지 않은가? 매주 504개의 광고를 보는데 심리적인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광고가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우선 결핍을 느끼게 한다. 결핍을 충족시켰을 때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핍을 충족시켜줄 자신들의 환상적인 제품/서비스를 소개한다.

지금 시대의 광고기술은 자본주의 기술의 총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딱 20년 전하고만 비교해봐도, 그 시절의 광고는 지금의 소비자들에게 촌스럽고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것이며, 지금의 광고는 그 시절 사람들에게는 당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는 헛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자사 제품의 다양한 기능들과 장점들을 조목 조목 읊어가면서 소비자들의 논리에 호소하던 옛날옛적 광고는 이제는 정말 순진해보인다. 현 시대의 광고는 행복, 성공, 성취, 즐거움, 쾌락 등의 원초적인 감정과 이미지를 자신들의 제품/서비스와 연결짓게 하는 고도의 쇄뇌 테크닉이다.

TV가 정말 악랄한 것은 원래 없었던 불안감, 욕망, 소비심리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더이상 소비할 의향이 없다. 따라서 TV는 선남선녀 연예인들의 화려한 삶, 환상적인 연애(섹스), 화목한 가정, 멋드러진 옷, 악세서리, 자동차, 집 등을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만족스럽던 시청자들의 소박한 삶이 사실은 얼마나 하찮고 가엽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되세겨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한심한 삶에서 벗어나서 TV에서 보는 환상적인 삶에 1mm라도 다가갈려면 광고하는 물건들을 사야 한다고 말한다. TV에 비친 모습들은 "환상적인"것이 아니라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은 교묘하게 감춘채.



TV는 엔터테인먼트라기 보다는 바보상자, 그리고 바보상자이기 이전에 "불행 제조기"이다. TV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거리를 찾아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이 시청자들을 불행하게 하기 위해 밤낮을 고민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TV industry는 시청자들의 불안감과 결핍을 조장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좀더 싼 값의 신발을 찾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동남아 sweat shop들의 아동착취를 불러오듯이, TV는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불만족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

TV를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쁘진 않다. 장점도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나 교육방송을 보더라도 책 몇장이나 위키피디아 한두 페이지 읽으면 더 자세한 내용을 얻을 수 있는 현 시대에서 TV의 "교육적 가치"를 운운하는건 어불성설이다. 아직 정신이 미숙한 청소년이나 유아들에게는 특히 TV 시청 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가짜(환상)를 구분할 만한 인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똑똑해진다/성공한다"하는 세계 여러 문화권에 존재하는 옛말들이 궂이 "종이책"이라는 미디엄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간접 경험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enrich할 수 있다는 점에서 TV드라마, 영화, 게임, 웹서핑 등 현대 미디아 또한 옛날 "책"에 준하는 정신고양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는 광고가 없다. TV가 절대로 책을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 본 Super Size Me라는 영화에서 몇년째 멕도날드 빅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비만 문제도 없고 건강하다는 사람이 나왔었다. 그의 비결은 바로 후라이와 콜라를 먹지 않는다는 것. 빅맥 버거 자체는 건강에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TV도 이와 마찬가지 원리가 아닌가 싶다. "나가수"같은 프로그램은 나무랄데 없는 훌륭한 대중음악 프로그램이다. 앞, 뒤의 광고만 잘라내면 TV도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컴퓨터 게임도 정신건강에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는 최근 연구결과가 있다. 뇌에는 특정 행동/조건을 충족하면 만족감을 느끼는 화학물질을 분비해서 그런 행동을 격려하는 "보상회로"가 있는데, 게임을 하다보면 보상회로가 너무 자주, 과도히 자극돼서 정신적 지구력이 약해지고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장기적인 계획을 따르는 것이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렙 체우는데 12년이 걸린다면 아무도 안 하겠지.. 아무튼 과유 불급이다. 엔터테인먼트는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 인생의 가벼운 여흥 정도로 즐기되 결코 빠지지는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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